한번 읽어보면 좋을 글이 있어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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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심한 마초들이 여성민우회를 욕하는가 [칼럼] 가족관계 호칭 잘못됐으면 당연히 고쳐야 입력 :2007-01-05 11:52:00   하재근 컬럼니스트

난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여긴다. 성매매 금지법이 논란이 되던 때 집창촌 아가씨들을 내쫓던 주류 여성계의 시선은 과거 88올림픽 당시 도시 빈민들을 보던 전두환의 시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냉혹한 환경미화, 혹은 잘 봐줘서 공허한 선의만 있는 막무가내 환경미화. 무슨 무슨 여성회에서 틈만 나면 각종 음란물(혹자는 이것들을 명랑물이라고 가리킨다)들을 물어뜯는 것에 대한 반감하며, 나도 누구 못지않게 공격적인 페미니즘 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런 내 관점에서 봐도 지금 대중이 보이는 여성계에 대한 적대심은 도를 넘었다. 깜빡깜빡, 빨간불이 ‘급’ 켜지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 댓글계를 초등학생들이 평정했다고 해도 그렇지 여성 관련 사건만 터지만 줄줄이 붙는 저주성 댓글들을 철모르는 초등학생의 그것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분명히 그 댓글들은 대중 일반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이민영이 이찬한테 맞았다고 하니까, 이민영이 무슨 맞을 짓을 했을까부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여성권익 얘기 나오면 즉각 제기되는 전가의 보도, “여자도 군대 가라”. 온갖 이유를 들어 제기되는 남성 역차별론 등등 양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하나다. 인류 역사상 처음 당하는 ‘여권’이라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미국에서 힐러리의 인기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것은 힐러리의 능력이 남성들의 공포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포심. 그렇다. 공포심이다. 노무현 정권이 이 땅의 지배자 그룹을 바꾼다는 공포심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에게 묻지마 저주를 불러일으켰듯이, 여성운동이 지배질서를 바꾼다는 공포심이 여성계에 대한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공포심은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상대에게 틈이 보였을 때 돌발적인 공격으로 폭발한다. 여성계가 얼마 전에 틈을 보였을 때, 즉 성매매 안 하면 현금 주겠다는 희대의 ‘뻘짓’을 했을 때 즉각 대대적으로 폭발한 여성부에 대한 공격을 상기하라. 남성들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던 것이다. 저들이 틈을 보이기만을. 틈을 보이자 바로 탄핵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성민우회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듯이 통용되던 가족관계 이름을 문제 삼고 나서자 다시 대오가 형성됐다. 기치는 정연하고 공격은 신랄하다. 여성민우회에 의하면 올케, 며느리 다 문제 있는 표현이고, 또 아가씨니 도련님이니 하는 호칭도 다 여성차별적인 것이란다. 대체로 말은 묻지마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어서, 즉 복잡한 어원이나 정치적 배경을 모르고도 그냥 의사소통의 차원에서 쓰는 것이므로 말을 건드리면 왠지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말을 문제 삼는 것이 매우 황당한 일인 것도 같다. 그런 황당함이 여성민우회의 문제제기를 여성부의 성매매 현금지급 ‘삽질’ 건 같은 절호의 기회로 일부 남성 제위들에게 인식됐다. 잠재됐던 공포심이 공격행위로 표면화 됐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말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 누구나 알 수 있다. 말은 현실 역관계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그 말을 씀으로서 다시 현실의 지배구조를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노동절’이 ‘근로자의 날’이 된 것은 노동을 배제한 한국 현대의 역관계가 반영된 것이지만,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노동을 배제하는 한국 경제의 성격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사영화’가 ‘민영화’가 된 것은 우익 천지가 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사영화’를 여전히 ‘민영화’라고 부름으로써 우익이 득세하는 세상은 계속해서 유지된다. 노동이니 민영화니 해도 이 말들이 표현하는 불평등, 모순구조는 끽해야 수십 년짜리다. 하지만 가족관계 호칭은? 동양문명의 수천 년 간에 걸친 불평등 구조가 가족관계 호칭에 절절이 배어 있다. 가족관계 호칭이 특히 중요한 것은 동양문명의 근간이 가족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 근간이 형성된 주나라 당시, 은나라를 물리친 주 무왕은 제국질서의 근간이 되는 원칙을 정했다. 그때 나온 것이 바로 ‘종법 질서’다. 종법이라 함은 적장자가 가문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이 종법이야말로 왕권, 황제권을 넘어 동양문명을 지탱한 핵심 질서였다. 드라마 <주몽>에서 금와황제가 왕자들에게 경합을 시키자 신하들이 동요하고 부여의 평화가 깨졌다. 금와황제가 종법 질서를 어겼기 때문이다. 이렇듯 종법은 왕권에 우선한다. 문명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종법이 근본 질서가 됐다는 것은 가족질서가 문명의 근간으로 확장됐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족 간의 ‘예’가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됐다. 조선조에 상복 입는 기간 등 ‘예’에 대한 논쟁으로 정파 간에 정치 투쟁이 벌어졌던 것엔 그런 배경이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가족관계 호칭엔 종법질서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쓰는 말은 여전히 봉건시대에 형성된 것들이다. 문화는 현실사회가 변화는 속도보다 지체하기 때문이다. 가족관계 호칭이 문제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수 천년 전에 틀 잡힌 주나라 종법질서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가? 종법질서의 특징이 그 안에 여성이 없다는 것이다. 여성은 부속물일 뿐이다. 어렸을 때 족보를 본 적이 있다. 시조를 처음으로 해서 삼각형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삼각형은 어색하다. 여성 쪽 조상까지 다 그리면 역삼각형이 나와야 한다. 여성을 다 내다 버렸을 때, 여성을 사람으로도 안 쳤을 때 나오는 것이 우리 족보의 삼각형 모양이다. 그 족보가 종법질서를 근간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가족관계 호칭은 그런 문화의 정수이지 않겠는가? 올케나 며느리가 문제 있는 말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 진위를 나는 모른다. 난 국어학자도 아니고 지금 나 하는 일이 바빠서 그런 것들을 일일이 조사할 수도 없다. 중요한 건 여성계가 동양 문화 불평등 구조의 핵심을 찔렀다는 것이다. 여성 민우회 주장의 진위를 떠나서 이것은 기뻐할 일이다. 진보가 별건가? 이런 게 진보다. 난 개인적으로 봉건사회를 너무나 싫어해서 조국근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 하재근 칼럼니스트. 전 서프라이즈 편집장, 현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블로그(http://blog.naver.com/ooljiana)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남들 앞에서 마누라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다. 집사람? 여자는 집안에나 쳐 있으라는 소리이므로 통과. 안사람? 같은 이유로 통과. 와이프? 외국어는 기본적으로 통과. 마누라나 처 정도밖에 안 남는다. 마누라는 원래 극존칭이었으나(한중록에 보면 궁녀들이 왕과 왕비에게 마노라라고 함) 지금은 천한 표현으로 격하돼서 어른들 앞에서 쓰기도 힘들고. 처는 어원이 뭔지 몰라 조금 불안하지만 이것밖에 달리 길이 없는 것 같다. 하여튼 마누라를 남들 앞에서 부를 말이 마땅치 않은 것에 대해 아직도 불만이다. 가족관계 호칭은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이미 굳어진 호칭이라 해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은 흠이 아니다. 굳어진 것을 끊임없이 흔드는 행위가 이 나라를 문화적으로 젊게 만든다. 말처럼 부지불식간에 정치적 관계를 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선 더더욱 가열하게 흔들어댈 필요가 있다. 설사 그 방법이 약간 어설프더라도 좋다. 여성민우회를 욕해선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