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라는 말에는 누구와 같이 사는 지는 나타나 있지 않고 그저 ‘같이 산다’는 의미만 나타나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같이 사는 것만을 가리켜 ‘동거’라고 할 근거가 없는 말이다. 독립해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어차피 사람은 누군가와는 ‘동거’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남녀는 같이 사는 거고(동거하는 거고), 혼인신고 하고 사는 남녀는 같이 사는 게(동거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남자친구+남자친구, 여자친구+여자친구끼리 같이 사는 건 왜 ‘동거’라고 하지 않을까? 게이 커플, 레즈비언 커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결혼해서 남편의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건 동거가 아니고 뭐라고 해야하나...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같이 사는 자녀 역시 부모와 ‘동거’하긴 마찬가지니까 ‘동거’라는 한자 뜻대로라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같이 사는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이지 떨어져 살던 남녀가 만나 같이 산다는 ‘합치’의 문제가 아니다. 혼인신고 여부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면서 실제로 쓰는 말은 혼자가 아닌 ‘같이’라는 말에 의미를 두다 보니 의미가 빗나가고 말았다.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사는 남녀를 가리키는 말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아니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그냥 “남자/여자친구랑 살어.” 이거면 된다. “같이(同)” 가 아닌 “누구”에 의미를 두어서 말하면 된다. 남자/여자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사는 것도 “같이(同)” 사는 거니까. ‘동거하다’는 말은 어차피 동거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에 부딪히는데 주체 즉, ‘누구’는 생략해 버리고 ‘동거한다’는 서술어만 부각시키는 건 당사자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더 중요한 사실은 결혼하고 같이 사냐,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사냐 이걸 구분해야 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왜 구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