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살 어린 시동생을 둔 사람이고, '도련님'과 '아가씨' 등의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제기에 동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가 문제제기하는 맥락은 '내가 나이도 무려 세.살.이.나 많으니 시동생에게 반말 [찍찍] 하는

[무식한] 행위를 하며 통쾌해 하고 싶다' 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성인이 되어 맺어진 관계에 상호존칭을 써주는 것에는 저도 감정적으로 동의합니다.

관계가 어찌되었든 보자마자 반말 [찍찍]하는 거 그리 좋은 일 아니죠.

사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구요. 첫인상 구기는 일이니까 말이예요.


하지만 꼭 [군대] 같은 계급 사회에만 서열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동호회 하나를 들어도 모임에서 처음엔 존대말 쓰지만 나중엔 서로 나이나 순서를 따지고

언니, 동생 하면서 편하면 말을 놓기도 하죠.

회사에서 일을 해도 나보다 후임이고 나이도 어리면 '00씨, 이것좀 해줄래?' 하면서

말을 놓기도 합니다.

물론 끝까지 존댓말을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지만, 사실 그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물론 다짜고짜 '넌 나보다 아래니까 당연히 하대를 해야지' 하며 말을 놓는다면

그건 굉장히 교양 없고 배려심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서로 친해져서 또는 상호 합의하에 자연스럽게 놓는 게 좋은 사람도 있을 거고,

그래도 끝까지 존대를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건 말을 하는 사람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개인의 선호가 다를 테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저나 다른 선영님들이 [남편에 기대어 어른 노릇하려고]

반말을 찍찍 하고 싶어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글을 약간 오독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나, '도련님'이란 호칭은 <강요의 문제>입니다.

다른 호칭이 없어요. 우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친하고 싶든, 말든,

어쨌든 시동생에게 '도련님' 이라는 극존칭을 써야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도련님'은 정말 사극의 종년이 쓰는 말이예요.

유래도 그것이 맞아요. 시댁 식구 그러니까 시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나보다 손아래인 시동생조차도 나의 <상전>이라는 겁니다.


'도련님'이란 호칭은 딱 이런 의미인 겁니다.

며느리는 그 집의 종년이다. 남편처럼 시동생에게 손위 형수 노릇 할 생각 말고

존대하고 받들어라.

모르시겠어요?


상호 존중, 상호 존대말도 서로 위치와 대우가 같을 때 빛나는 거죠.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저런 호칭을 하게 하면서 (그러면 자연스럽게 존대말도 하게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니 서로 존대를 하거라' 라고 하면 그게 통할까요?


그래서 호칭을 바꾸자는 거죠.

사실 존대는 선택입니다. 저도 시동생과 약간 거리를 두고 존중해준다는 의미에서

존대말을 쓸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도련님'이라는 호칭이 저에게 시동생에게의 존대를 강요하는 한,

저는 이런 너그러운 존대말도 하기 싫어질 것 같습니다.


사족 하나 붙일께요.

이전에 어느 님께서 올려주셨던 글인데,

본인 형부께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자신에게도

"처체, 오늘 식사 맛있게 했어요?" 하면서 말을 올려주어서 너무 좋단 글이었어요.


그런데 만약에 부인의 동생에 대한 호칭인 '처제' 대신 '아가씨'라는 호칭을 그 형부에게 강요한다면,

그분이 과연,

"아가씨, 오늘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하고 너그럽고 멋지게 처제를 존중해줄 수 있었을까요?


저도 만약에 '도련님'이라는 기만적인 호칭이 없어진다면

"식사했어요? 내가 얼른 차려줄께요~" 하고 웃는

너그러운 형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도련님'이라고 형수의 자율성과 위치 자체를 한없이 낮게

묶어놓는 호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군대보다도 못하게 서열이고 뭐고 다 떠나서 무조건 며느리가 가장 아래가 되는

대한민국 호칭체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존중이란 같은 출발점에서 서로를 존중할 때 나오는 거지,

어느 한쪽에 무조건적으로 낮은 지위와 극존칭 호칭을 강요하여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miclup, 마음클리닉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