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는 '아들'은 있어도 '딸'이라는 말은 없다. 그래서, '계집(女)'이라는 말을 딸이라는 뜻으로 같이 사용한다. 한국말에는 '아들'과 '딸'이라는 말이 있는데도 왜 자제, 자녀, 자식이라는 어설픈 한자표현을 쓸까?

어른에게 애들이 몇 명이냐고 묻는 말을 보자.

1. 자제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2. 자제분은 얼마나/몇분이나 두셨나요?

1. 묻는 사람이나 질문을 받은 사람이나 서로 뜻은 통하지만 사실 이 말은 몇 명인지를 묻는 말은 아니다. 비슷한 예로 “어떻게 오셨습니까?”를 우리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로 알아듣긴 하지만 ‘어떻게’는 ‘방법/수단’을 나타내는 말이니까 버스, 자전거, 기차, 비행기, 배 같은 교통수단을 얘기하는 걸로 알아들을 소지가 충분히 있다.

2. 자제분을 ‘두다’니? ‘두다’는 의지가 반영된 말이다. 몇이나 ‘있냐’는 ‘존재’를 묻는 말에는 ‘의지’가 반영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정작 지적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고 ‘자제’라는 한자표현이다. 자제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아들과 아우(子弟)’, ‘윗누이와 아우(姉弟)’가 된다. 이건 아들과 딸이 몇 명이냐고 묻는 표현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식이 몇 명입니까?”, “자녀가 몇 명입니까?”는 맞는 표현이냐! ‘아들과 자식(子息)’, ‘아들과 여자(子女)’라는 말에도 ‘딸’이 없으니까 이 또한 옳은 표현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뜻이 통하도록 하려면 “아이들은 몇이나 있나요?”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 된다. 존대를 한다고 한자를 써서 ‘자제분’, ‘자녀분’ 하는 데서 의미 왜곡이 이루어진다면 그 존대법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아직 개인의 정체성이 불투명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