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부를수록 기분 좋아지는, 즐거운 호칭으로 바꾸자'

 이 취지는 그야말로 좋은 말이다. 또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언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어원이 본래 이러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식의 논리대로라면

 바꿔야 할 '말'은 어쩌면 무수히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언어란 현 시대에 어떤 의미로 언중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캠페인의 주제인 호칭은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 이 두 당사자들이

 어떤 의미를 담아 부르고 어떻게 느끼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호칭이란 호칭어도 호칭어지만

 그에 따르는 경어법과 부를 때에 담아서 전해지는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호칭어와 함께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투와 어조의 뉘앙스가 중요하단 말이다.

 며느리는 가리킴말이다. 부를 때는 '아가/새아가'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가~'라고 부르는 말, 참 정겹게 느껴진다.

 타인에게 지칭할 때도 '우리 며느립니다.' '며느님이 참 참하네요.' 와 같은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말 자체가 여성 비하적 느낌이 든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설령 그 어원은 그렇다 할지라도 현재,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분에 따라 '야'라고 부르거나

 타인에게 지칭할 때 '얘/걔/쟤'와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표준 화법과 관련된 책을 보면 위와 같은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올케의 경우에는 근래에 남동생의 아내를 부르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오빠의 아내를 부르는 말은 '새언니/언니' 쪽으로 많이 굳혀져 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올케의 어원을 전혀 몰랐다.

 다른 여성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민우회에서 제시한 올케의 어원이 맞다면 현재 '올케'라는 말은 일단 지칭하는 대상이 바뀌어 쓰이고 있다.

 오히려 '올케'라는 말은 그 어원 때문에 불쾌하기보다는

 손아래시누이가 새언니에게 '언니'가 아닌 '올케'라는 호칭을 하는 경우라고 보여진다.

 듣기로는 대개 손아래시누가 새언니보다 나이가 많을 경우에 그런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호칭어가 말의 등급과 꽤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말하자면 호칭어와 경어법이 하나의 연결고리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제 '올케'라는 말은 남편의 누님이 남동생의 아내를 부를 때 쓰이며

 이 '형님'은 '올케'에게 하게/해체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올케'라는 말이 존대어라기보다는 손아래를 부르는 말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보다 도련님과 아가씨와 관련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어렸을 때 사극을 보다가 현대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나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도련님과 아가씨라는 호칭어 때문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도련님과 아가씨란 말이 오늘날 예전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아니다.

 특히나 친족 호칭어에서 쓰이고 있는 도련님이나 아가씨란 말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그런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TV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단순히 바보상자가 주는 병폐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미디어가 우리의 사고나 관념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도련님이나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이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 같고

 심지어는 자존심까지 거론하며 굴욕적인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단순히 사극에서 빚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극에서만 나오고 그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고어일 뿐 현재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현대 드라마를 보자.

 현실에서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잣집 정원수나 운전기사들이

 도련님이니 아가씨하는 호칭을 써 가며 아주 깍듯이 모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아직까지는 무언가 뚜렷한 직책은 없지만 대우해야 할 젊은 남녀를 피고용인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이런 단어에서 알게 모르게 뭔가 상대를 극존칭하고 떠받드는 듯한 어감을 갖게 된다.

 때문에 나는 어원이 어쨌든, 당시에 쓰이는 말이 어쨌든 간에

 이런 어감이 알게 모르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말이

 친족 호칭어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참 의문스러웠던 사람이지만

 드라마가 조장했다면 조장한 이미지가 또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가족드라마를 보면 갓 결혼한 새댁이 시집 식구들과 갈등을 겪는 장면들이 많이 그려진다.

 시동생들과의 갈등 연출도 많은데 특히 시누이와의 신경전이 꽤나 많이 나온다.

 일부 예의 없는 시누이가 은근히 자신의 몫까지 새언니의 '살림'으로 돌려버리면서

 말투도 존대 아닌 어중간한 형태를 취한다.

 예를 들어 '언니, 혹시 제 구두 못 보셨어요?' 가 아니라

  '언니, 내 구두 못 봤어요?' 이런 식의 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 반면에 새언니와 형수는 아가씨와 도련님이라는 호칭어 때문에

 하대는 물론이고 반존대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군다나 아가씨와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할 상대가

 성인이 아닌 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이라면...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현 세태는 바뀌어가고 있고, 또 바뀌었겠지만 

 우리는 방송에서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 모시는 것 뿐만 아니라

 남편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며느리의 모습을 많이 봐 왔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결혼하면 시댁 식구들을 모두 '모시는' 존재로 인식되었고

 때문에 그에 따르는 호칭어는 모든 집안일을 떠맡게 된 아내가

 스스로 자기 비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 것이다.

 지적해야 할 사항이 또 있다.

 남편들은 아내의 동생들에게 처남, 처제라고 부르며 하대한다.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시되어 있다.

 이런 고정관념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전통적 예절을 중시하는 분들은 본래 처제에게는 '처제씨'라고 불러야 하며 존대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난 주변에서 처제, 처남에게 존대하는 사람 못 봤다.

 표준화법을 보면 아내의 동생들이 아주 어릴 때는 이름을 부르는 것도 허용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이 어린 시동생, 시누이에게도 도련님, 아가씨라고 부르는 아내 입장은 뭐가 되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똑같이 반말하자는 것이 내 주장은 아니다.

 민우회의 캠페인도 시집 식구들에게 반말을 하자는 것이 아닐 거라 믿는다.

 양성 평등적인, 쌍방이 기분 좋은 호칭을 생각해 보자는 것 아닌가?

 사실 시집 식구나 처가 식구나 똑같이 어려워해야 한다.

 손위어른이라면 존칭하고 존대하며 공경하고

 손아래사람의 경우는 친근하게 대하되 존중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아가씨, 도련님의 호칭이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며 정겨운 말인데 왜 그것을 문제삼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 중에 부르는 사람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개중에는 민망하거나 낯간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막말로 손해보는 것은 없다.

 나는 지인으로부터 대접받는 느낌, 뭐라도 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좀 충격이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봉건적 언어 개념에서 비롯된 느낌과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호칭이 서로 정겹고 좋다면 당연히 그렇게 불러야 맞다.

 그러나 특히 '새댁'들이 시동생과 시누이를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몰라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위 사람들이 쓰는 말을 알고는 있지만

 대충 얼버무리거나 자식이 생기면 자식에게 기대 'ㅇㅇ 삼촌/고모'

 그 삼촌과 고모에게 자식이 생기면,

 특히 기혼 남동생에게 서방님이란 말이 낯간지러워  'ㅇㅇ 아빠' 라고 부르는 경우를 꽤 많이 보았다.

 호칭이 어색하고 입에 잘 붙지 않는다는 증거 아닌가?

 난 반문해 보고 싶다.

 남편들에게 처제, 처남을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하라면 선뜻 하겠냐고.

 그때도 저 호칭이 그저 전통적이고 정겹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전통적이기 때문에,

 그 전통적인 개념이 아직도 현실에 잔존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은 아닌가?

 남편이나 아내나 자신의 식구들이 배우자로부터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찬가지다.

 난 시동생의 경우 '아제'라는 호칭을 써 보는 건 어떨까 한다.

 전라도 방언에서는 남편의 남자형제들을 '아제'라고 부른다.

 '아제, 왔어요/오셨어요?' 어감도 부드럽고 사투리라 그런지 몰라도 정감도 느껴지고..

 시누이의 경우도 좋은 대안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 방언을 적극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몇 가지 누리꾼들의 글에서 발견되는 쟁점이 있다.

 하나는 '님' 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형수'를 '형수님'이라고 안 해서 기분 나쁘다면 '형부'도 '형부님'이라고 하라는 것이다.

 우리말은 이미 존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한자어에

 접미사 '님'을 붙여 존대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사장', '회장', '선생' 등에 이미 높임의 뜻이 담겨 있지만 부를 때는 '님'자를 붙여 평칭과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특히 친족 호칭어는 호칭어와 경어법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형부'라고 부른다고 해서 '형부, 왔어요?' 라며 반존대하는 것이 아니라

 '형부, 오셨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형수'의 경우에는 보통 그 배우자인 형이나 손윗어른이 시동생에게 지칭할 때 '네 형수가...'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호칭어가 될 때는 평칭 내지 약간의 하대 느낌이 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정 내 서열과 나이가 엇갈리는 경우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남자들도 아무리 나이 어린 형수라도 존대하고 아무리 나이 어린 제수씨라도 존대하며

 자신보다 어린 남편의 오빠에게도 형님하며 존대한다는 것이다.

 혼인을 하면서 맺어지는 쌍방 친족 간의 관계는 나이가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다.

 형수는 형의 아내이므로 당연히 존대해야 하고

 아내의 오빠는 아내의 손윗사람이니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여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남편 형의 아내는 남편 손윗사람의 배우자이므로 나이가 어려도 형님이요,

 남편의 누나 역시 남편의 손윗사람이므로 나이가 어려도 형님인 것이다.

 제수씨의 경우는 원래 친족 관계에서 異姓에게는 존대를 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손아래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존칭은 써 주어도 극존이라기보다는 반존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사실 이런 것들을 놓고 그럼 이것도 똑같이 하자는 주장들은 참 답답하기 그지 없다.

 서열과 나이가 엇갈려 빚어지는 갈등들은

 자신의 서열이 위라고 하대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무턱대고 하대하며 윗사람 행세를 하려는 손윗사람과

 나이에 연연하여 어린 손윗사람에게 존대하는 것이 못마땅한 손아랫사람의 마음 때문이다.

 서로를 마음으로써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갈등과 오해의 소지는 줄어들지 않을까?

 논의에서 확장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참에 무질서하고 중복이 많은 우리네 친족 호칭어에 대해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2차 사회에서의 호칭어도 원칙이 없다 보니 너무나 무질서하게 쓰이고 있는 것 같다.

 밖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마땅치 않아 곤란함을 겪은 일은 없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으로 합의된 체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